연말 잦은 술자리로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시달릴 때면 속을 풀어주는 해장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해장음식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딱히 이거라고 꼽기 어렵지만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는 할머니 말씀 참고 삼아 인문적 관점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먼저 해장이란 무엇일까? 흔히 술에 시달린 속을 풀어 준다고 해장(解腸)이라 하지만 정확한 용어는 해장이 아닌 해정(解酲)이다. 숙취를 푼다는 뜻인데 도긴개긴 비슷해 보여도 의미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해정의 정(酲)은 숙취라는 뜻으로 닭 유(酉)와 바칠 정(呈) 자로 이뤄진 한자다. 얼핏 술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유는 술 주(酒)의 옛 글자고 정은 미칠 광(狂)과 같은 뜻이다. 음주로 속이 쓰리고 머리가 깨 질 듯 아파 미칠 것 같은 것이 숙취이고 이걸 풀어주 는 게 해정이다. 해장은 해정의 여러 방법 중 하나다. 한국인은 주로 속을 달래 숙취를 풀었기에 옛날부터 뜨거운 국물을 최고의 해장음식으로 꼽았다. 해장국은 조 선 후기 시장 발달과 함께 널리 퍼졌지만 14세기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이 “뜨거운 국물에 주독이 금세 풀린 다”고 한 것을 보면 선조들은 훨씬 먼 옛날부터 해장국으로 술에 지친 속을 달랬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유독 해장국이 발달했다. 전주 콩나물 국부터 부산 복국, 하동 재첩국, 서울 청진동 선 지해 장국, 무교동 북엇국과 배춧국, 양평 해장국, 서산 태안 우럭젓국, 목포 연포탕, 순천 짱뚱어탕, 여수 광양 갯장어탕, 영동 괴산 올갱잇국, 속초 주문진 곰치국, 울 산 포항 물회 국수, 양양의 섭국, 제주 갈칫국 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이 중에서도 유서 깊은 것은 콩나물국이다. 6세기『신 농본 초경』에 콩나물은 위의 부기를 빼고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어 끓여서 복용한다고 했다. 거창하게 표 현했지만 어쨌든, 콩나물국이다.『동의보감』에도 장 과 위에 몰린 응어리를 푸는데 좋다고 나오니 의학적 근거까지 있다. 옛날 동양에서는 설탕물도 최고로 꼽았다. 한나라 역사책『한서』에는 자장(柘漿)이 아침 숙취 해소에 좋다고 나온다. 자장은 사탕수수 물이니 지금의 흑당 버블티가 여기에 해당된다. 술 마신 후 꿀물로 속을 푸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서양은 숙취 해소로 절인 양배추를 먹는데 이 역시 뿌리가 깊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저서 『농업론』에서 술을 많이 마셨을 때는 되도록 양배 추를 많이 먹는 것이 좋고 음주 전에도 양배추를 먹으 면 아무리 많이 마셔도 걱정이 없다고 했다. 카토뿐 아 니라 피타고라스 등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철학 자들이 모두 양배추 예찬론을 폈다. 이렇듯 동서양에 다양한 해장음식이 있지만, 두주불사 주당한테는 매생 잇 국이 어울린다. 소화에도 좋고 숙취 해소에도 안성맞춤이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팔팔 끓인 매생 잇 국은 겉보기엔 그다지 뜨거워 보이지 않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열기가 뿜어져 입천장 데기에 십상이다. 옛날에도 사위가 미운 짓 하면 장모님이 매생 잇 국으로 골탕을 먹여 ‘미운 사위 국’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좋은 해장국도 도가 지나친 주당한테는 효 과가 없을 테니 매생 잇 국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