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자라는 철부지 아이들의 흔한 말다툼. 어린이 세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뭇 진지한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한 아이의 외침이 전장(戰場)의 쐐기를 박았다. “법대로 해! 우리 아빠 변호사야!” 숨바꼭질 술래의 잘잘못을 논하는 자리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법이 등장하자 천진난만했던 아이들의 얼굴색은 이내 잿빛으로 변했다.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법의 심판 앞에서 원만한 화해와 의견 합치를 위한 토론은 존재가치를 잃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변호사 아들의 표정은 의기양양했지만, 무리의 규칙에 법의 잣대를 들이댄 그 녀석은 시나브로 아이들과 멀어졌다. 그날 이후 배려하고, 타협하고, 양보하고, 토론하며 성장하던 아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겼다.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마중물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말 그대로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 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회사가 잘못된 사내 문화 예방과 징계 등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매뉴얼을 살펴보면 그 수위가 애매해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직장 동료 간의 물리적인 폭력이나 폭언, 인신공격 등 꼭 법으로 규정하지 안 더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예시들이 제법 담겨있다.
매뉴얼 속 예시가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밥벌이를 위해 부당함을 온 몸으로 참아내야만 했던 약자들의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장 내의 이러한 비윤리적인 행위는 개인을 넘어 조직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하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그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너 신고’ 사태에 대한 합리적 의심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법이 정화(淨化)의 도 구로서 기능하지 않고, 앞서 말한 적용과 해석의 애매함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의 씨앗 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우리의 삶 속으로 안전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조직을 깨뜨리는 법의 오용과 남용이다. 법은 처벌이 아닌 공동체의 질서와 화합을 위해 존재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 행은 그동안 강자였던 이에게는 두려움을, 약자의 편에 있던 이에게는 든든함을 가져 다 주었다. 하지만 이 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집단의 조직 력을 한 순간에 와해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선배의 충고를 듣고 그저 기분이 나쁘다며 그 선배를 신고한다거나, 조직의 리더가 후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면,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잘못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해 엄중히 문책해 야 한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대화와 상담, 교육 등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까지 법적 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하는 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마치 정글과 같은 치열한 사회생활 속의 약자들을 위해 생 겨났다. 법의 취지 역시 강자들의 일방적인 괴롭힘에서 벗어나 회사에 속한 모든 구성 원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건강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닌, 공존과 화합을 위한 법으로써 기능할 때 비로소 그 존재가치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또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히 맞서 싸우 되, 그 법을 이용해 내가 조직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직장생활은 항상 힘들지만,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사람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직장 인은 가장 힘든 사람과의 끊임없는 관계 맺음을 통해 돈을 벌고, 성장하며, 행복을 찾는다. 회사일은 사람이,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러한 직장인의 삶이 보다 풍성하고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입된 것이 바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