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창고

동네슈퍼가 대부분이던 1989년. 국내 최초로 편의점이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에 1호점을 낸 주인 공은 당시 미국계였던 세븐일레븐. 소비자들은 난생처음 보는 편의점을 매우 생소하게 여겼다. 세븐일레븐의 생존전략 은 간단했다. 특별한 제품을 팔지도 그렇다고 싸게 팔지도 안 는 것. 다만 동네슈퍼들이 문 닫는 시간을 공략했다. ‘24시간 영업’이란 참신함에 점점 이용객이 늘어났다. 이어 △훼미리 마트(현 CU) △미니스톱 △LG25(현 GS25) 등이 줄줄이 시 장에 등장하며 판이 커졌다. 편의점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국내 편의점 수는 4만 8,094개(2020년 말 기준)에 달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귀갓길 까지 마주치는 수십 개의 편의점을 지나치지 않고는 길을 다 닐 수 없을 정도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편의점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성장 속도도 세계 최고. 편 의점산업은 출범 이후 단 한해도 성장을 멈춘 적이 없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매장들이 고전을 면치 못 할 때도 ‘나 홀로 독주’를 있어갔다. 워낙 잘 나가다 보니 서비 스도 다양해졌다. 편의점은 이제 단순 제품을 파는 곳을 넘어 생활 거점으로 진화 중이다.

 

편의점 업계가 24시간 뜨겁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1,000만 여 명이 편의점을 이용하고 편의점 불모지로 통했던 마라도, 울릉도, 백령도 지역에도 점포가 들어설 정도. 이런 기세에 힘입어 지난해 코로나19 속에서도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 다. 매출 성장률도 한 자릿수 대를 유지했다. 유통업계 전반이 쇠퇴기를 걷는 가운데 편의점만 예외 선상에 있다는 평가다.

 

대형마트 제치고 생활 플랫폼이 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을 살펴보면 국 내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의 매출 비중은 지난해 31.0%(온라인 제외)에서 지난 4월 31.4%로 올라서며 같은 기간 33.5%에서 29.5%로 떨어진 대형마트(이마트·롯데마 트·홈플러스)를 처음으로 제쳤다.

 

명품과 패션 호조로 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28.4% 에서 32.9%로 올라서며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일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편의점이 ‘생활 플랫폼’으로서 입 지를 공고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품별 매출 신장률을 봐 도 가공식품(17.7%), 생활용품(11.9%), 잡화(10.2%), 신선 식품(7.7%) 등 전 상품군에서 매출이 1년 전보다 고르게 증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매출 증대의 일등공신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세대)다. 편의점 매출 가운데 MZ세대가 차지하는 비 중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을 끌어모은 비결은 트렌드 대응이 다. 편의점 업계는 본사에 데이터 분석팀을 따로 두고 일 단 위로 시장 트렌드를 조사한다. 덕분에 소비자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신속하게 상품 개발과 판매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 졌다.

 

대표적 사례가 ‘곰표 밀맥주’다. 편의점 CU가 소맥분 제조업 체인 대한제분, 수제맥주업체인 세븐브로이와 손잡고 업계 단독 출시한 수제 맥주. 젊은 층 사이에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과 ‘레트로’(복고) 열풍이 어우러지며 출시 3일 만에 초도 물 량 10만 개, 1주일 만에 30만 개가 완판됐다. 올해는 국내 첫 수제 맥주 위탁생산으로 물량을 지난해보다 15배 늘린 300만 개를 공급했으나 이 역시 공급 2주 만에 모두 팔렸다.

 

편의점 GS25는 지난해 영화 ‘기생충’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기 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나흘 만에 영화 속에 등장한 ‘채끝 짜파구리’ 기획상품을 내놨다. 이 상품은 당시 모바일 앱을 통해 하루 200개씩 한정 판매했는데 행사 기간 인 5일 내내 1~2분 만에 매진됐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유튜브와 SNS의 확산으로 이색 신제 품을 구매하는 젊은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편의점 매출 증대의 핵심 포인트가 됐다”라고 말했다.

 

은행 품은 편의점, 금융서비스로 영역 확장

트렌디한 상품 외에도 편의점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추가 하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금융, 배달, 모빌리티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선보이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 중이다. 은행의 수납 기능을 대체하던 것을 넘어 이제는 아예 편의점 안으로 은행이 들어올 예정이다. GS25의 미래형 혁신 점포에 온라인으로 금융업무를 볼 수 있는 별도 공간이 마련되는 것. 은행 직원과 고객은 별도 공간에서 온라인 쌍방향 소통을 통해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다.

 

GS25는 신한은행과 손잡고 금융 업무 사각지대에 놓인 격오 지와 도서 지역에 우선적으로 미래형 혁신 점포를 구축 해나 가기로 했다. △온·오프라인 채널 인프라 융합을 통한 ‘미래 형 혁신 점포’ 공동 구축 △편의점을 통한 특화 금융 상품 및 서비스 제공 프로세스 구축 △MZ세대에 특화된 전자 금융 서비스 개발 등이 골자다. 편의점에 은행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CU는 통장 개설, 비밀번호 변경 등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금융 키오스크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GS25가 추진하는 것과 달리 일방향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조만간 편의점에 외화 환전서비스도 들어온다. CU는 지난해 외화 환전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핀테크 전문회사인 유핀테크허브와 업무제휴를 맺었다. CU 측은 올해 안에 서비스 도 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사는 온라인으로 환전을 신청하면 가까운 편의점에서 24시간 환전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서비 스를 구상 중이다.

 

국내 입국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송금 대금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외국인이 자국에서 온라인으로 사전 송금한 금액을 국 내 입국 후 CU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원화로 찾을 수 있는 서비스다.

 

생활편의 제공 넘어 시민 안전 인프라로 기능

편의점은 공적 영역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7년 CU가 시작한 뒤 편의점 3사가 모두 실시하고 있는 실종아동 찾아 주기 캠페인이 대표적. 편의점 3사는 지난해 장마 기간 행정 안전부 등과 함께 이재민 구호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기도 했다. 아동이나 여성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경찰서에 대 신 신고해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결식 우려 학생을 위한 희망 급식바우처의 사용처로 지정되는 한편 치매 안심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실종 치매 환자가 조기에 발견되도록 전국 편의점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 편의점이 치매 노인의 증상을 파악하고 임시 보호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셈이다. 업계에선 편의점이 현대판 ‘만물상’으로 진화하는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MZ세대뿐 아니라 접근의 편리 성이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층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일본의 경우 노인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나 생필품 택배 서 비스, 점포 내 조제 약국 설치 등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한 국에서 편의점은 곧 노인 복지 정책의 공간적 거점이 될 것” 이라고 썼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양적 서비스 보단 질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며 “소비자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측면에서 편의점 영역 파괴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