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체계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장에서 부상병의 응급 처치와 후송을 위해 탄생해 전쟁사와 함께 발전해왔다. 나폴레옹 시절 처음으로 전장에 의무병과 구급 마차를 투입한 이후, 크림 전 쟁에서 나이팅게일의 활약을 통해 응급의료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골절 고정술(골절 발생 시 긴급하게 뼈를 고정하는 요법)’이 도입됐고, 스페인 전쟁에서는 ‘현장 수혈’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수액요법과 현장 쇼크 처치가 가능 해졌고, 베트남전에서는 헬기나 제트항공기를 이용한 부상자 후송 이 이루어졌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이야기
“만일 어떤 환자가 추워한다거나, 고열에 시달린다거나, 쇠약해 있 다거나, 음식을 먹고 괴로워한다거나, 또는 욕창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질병 자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간호에서 기 인한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쓴『간호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크림전쟁 당시 영국군 전사자가 5,000명이었던 반면, 전염 병으로 인한 사망은 1만 5,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나이팅게일은 적절한 간호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몸소 증명한 인 물이다.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에 등장한 지 6개월 만에 환자의 사 망률은 42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응급실의 처음과 현재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개념의 응급실은 1911년 미국의 루이빌 시 립 병원에서 개소한 외상 센터다. 우리나라에서는 1938년 경성 소 방서에서 구급차를 운행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0년 4.19 혁 명 당시 수기에서 응급실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각급 병원별로 운영되던 응급실은 90년대 들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1991년 공표된 응급의료관리규칙에 따라 응급환자정보센터가 설 치되고 응급의료지정병원 등이 지정되었다.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00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응급의료 센 터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응급의료기관 체계가 마련되었다.
알고 나면 쓸데 많은 응급실 상식
주변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않고 환자의 호흡, 출혈 정 도, 심장박동 및 이동 가능성을 확인한 후 119에 구급차를 요청하 는 것이 좋다. 응급상황이 옥외에서 발생한 경우 주변의 건물, 특징 적인 장소를 말하고, 실내라면 층수와 엘리베이터 유무를 설명하 면 신속한 위치 확인에 도움이 된다. 신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연 락이 언제든 가능하도록 전화를 옆에 두고, 필요시 전화로 설명을 들으며 응급처치를 하는 것도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비응 급환자의 무분별한 응급실 진료를 막기 위해 야간(오후 6시 이후)이나 휴일은 응급 진료비가 가산된다는 점도 알아두자.
‘움직이는 병원’ 구급차는 누가 만들었을까?
매일 매일이 전시 상태였던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유능 한 군의관이 많이 배출됐다. ‘도미니크 장 라레’도 그중 한 사람이 다. 라레는 어느 날 나폴레옹이 신설한 기마 포대를 목격했다. 대 포를 끌고 전속력으로 목적지에 도착해 발포하는 부대였다. 라레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포 대신에 의약품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개조한 마차를 고안했는데 바로 이것이 최초의 구급차다. 그 는 자신이 만든 구급차로 전투 현장에서 부상병을 치료했고, 그가 수술한 부상자의 완치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치료 효과도 좋았 다고 한다.
코로나 19 시대의 응급실
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응급실을 비롯한 전체 응급의료체계 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진료에 앞서 환자가 코로나 19 환자인지 먼 저 밝혀야 하고, 코로나 19 증상 악화로 내원하는 환자 수도 크게 늘어 업무량도 폭증했다. 또 코로나 19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방호 복을 입고 진료를 보는 것에서 오는 의료진의 제약도 상당히 커졌 다.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의료진들은 최근엔 코로나 19 백신 이후 부 작용 환자의 발생 우려까지 있어 더욱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 19 증 상이 있는 경우, 곧바로 응급실을 찾지 말고 질병관리청(☎1339)에 먼저 전화해 상담을 받은 후 안내에 따르는 것이 좋다.